한국을 점령한 커피, 한국인을 닮아가다

거의 매일 2잔씩의 커피를 마시고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이제는 커피가 기호 식품이 아닌 필수 식품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출처 ) http://life.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2/2017101201726.html

[Cover Story] 전국민이 하루 한 잔… 유행에 휩쓸리고, 맛은 강해지는 커피

올 추석 연휴 고향에 다녀온 한국인이 고속도로상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뭘까. 아메리카노 커피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한국도로공사 ‘휴게소별 매출액 최상위 제품’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188개 고속도로 휴게소 중 40%에 해당하는 76개소 매출 1위가 아메리카노였다. 연휴 기간이라고 그리 다르진 않았을 테다.

커피

도로 밖 사정도 마찬가지. 농림축산식품부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 5월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400잔을 훌쩍 넘었다. 하루 적어도 한 잔은 먹는다는 얘기다. 국제커피기구(ICO)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커피 소비량 1위 국가인 미국, 2위 브라질 등에 이어 15위에 올랐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커피 사랑’을 넘어 ‘커피 중독’에 이르렀다.

커피는 기호품이다. 기호품의 사전적 정의는 ‘영양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향기나 맛 또는 자극을 즐기기 위한 것’. 하지만 2017년 대한민국에서 커피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한국에 커피가 소개된 시기는 1890년 전후지만 이때는 왕실 등 극소수 상류층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커피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1960년부터로 50여 년 전에 불과하고,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원두커피가 우리 삶에 급속도로 파고든 건 불과 10여 년 만의 일이다. 수백 년 전부터 커피를 마셔온 외국과 비교하면 일천한 역사지만, 압축 성장은 커피에서도 통했다.

서울시가 ‘열린 데이터 광장’에 공개한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 식품위생업소 현황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커피빈·할리스커피 등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수는 약 1만5000개. 서울 지도에 카페를 점으로 찍으면 북한산 국립공원을 제외한 서울 전체에 촘촘히 박혀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의 대표 격인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게 1999년. 스타벅스의 성공에 영향받아 국내외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2002년에 762개였던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15년 만에 무려 20배 가까이 불어났다.

우후죽순 들어선 커피숍은 동네 풍경마저 바꿔놨다. 목 좋은 곳엔 어김없이 커피숍이 들어서고, 문 닫은 가게는 대부분 커피숍으로 변신한다. 도심을 걷다 보면 ‘가게 하나 건너 커피점’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전망 좋은 여행지엔 분위기 좋은 카페가 필수. 커피숍 사장 꿈꾸는 젊은 세대도 많다.

한국인의 삶에 급속도로 파고든 커피는 어느덧 한국인을 닮아가고 있다. 맛은 급격히 독해졌다. 커피 선호에도 한국 사회 특유의 유행 쏠림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캡슐 커피, 질소 커피…. 커피마저 유행 탄다. 커피에서도 미국 문화의 영향이 커, 미국식에서 보편화한 테이크아웃 문화와 아메리카노 커피가 대세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커피 역사 긴 유럽에선 여전히 커피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게 정석이다. 한국인을 닮아가는 한국의 커피 문화를 살펴봤다.

커피

◆ ‘빨리빨리’ 커피 믹스… 강렬하게 ‘샷’ 추가… 유행 따라 콜드브루, 질소커피…

커피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 커피 의존 사회

“임신했을 때 태아에 카페인이 해로울 것 같아 커피를 며칠 끊었는데 견딜 수가 없었어요. 머리가 아파서요. 의사 선생님이 하루 한두 잔은 괜찮다고 하셨는데 맘이 영 불편하더라고요.” 두 살과 네 살 된 아들을 둔 주부 서지은(38)씨는 임신했을 때 제일 괴로운 게 커피였다고 한다. 20대 초반부터 하루도 안 거른 커피를 끊는다는 건 고통에 가까웠다.

대학생 이혜인(22)씨에게 커피숍은 제2의 집. 머무는 시간으로만 따지면 집보다 더 오래 시간 보내는 공간이다. 매일 서울 신촌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출근’해 7~8시간 공부하다 ‘퇴근’한다. 지방 출신으로 오피스텔에서 사는 이씨는 “집에선 집중하기 힘들 때가 많고 대학 도서관은 자리 잡기 경쟁이 치열하다”며 “쾌적하면서 적당한 긴장감 있는 카페는 최적의 공부 장소”라고 했다. “커피숍 없는 일상요? 상상이 안 가요.”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가게 하나 건너 커피점 있는 ‘커피 천국’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단면이다. 커피와 커피숍에 삶을 기댄다.

압축 성장한 한국 사회, 커피도 압축 성장

커피 일러스트

커피 의존도는 높아졌지만, 수백 년 넘는 커피 역사를 지닌 서양에 비해 한국과 커피의 인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커피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9세기 말 임오군란(1882년) 이후부터 1890년 사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임오군란 이후 서양 외교사절이 왕실과 귀족을 사로잡기 위해 커피를 진상했고, 커피의 향미와 카페인은 조선의 지배층을 매혹시켰다. 최초의 한국인 커피 애호가로 꼽히는 고종이 대표적이다.

일제 강점기엔 일본인들이 서울 명동부터 진고개(충무로)까지 일본인 상권에 일본식 다방 ‘깃사텐(喫茶店)’을 세우고 커피를 팔았다. 한국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이 1927년 종로 관훈동에 ‘카카듀’를,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 복혜숙이 인사동에 ‘비너스다방’을 내는 등 한국인이 경영하는 다방도 차츰 늘어났다. 1929년 종로2가 YMCA 근처에 연 ‘멕시코다방’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당시 커피값은 한 잔에 10전. 조선인 남성 노동자 일당 60~80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비쌌다.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은 ‘비싼 돈 주고 설탕물 사서 마신다’는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화의 상징인 다방을 드나들었다.

커피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건 6·25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를 통해서다. 미군의 C레이션에 들어있는 커피를 뭔지 모르고 냄비에 끓여 마셨다가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숨도 가빠지고 두통도 나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충무로가 한국 영화의 메카가 된 건 1960년대 충무로의 다방들을 영화인들이 사무실이나 연락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명동에 사람이 몰리고 번성하자, 영화인들은 명동의 다방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종일 앉아 있기 민망해졌다. 마침 충무로에 ‘태극다방’이 문 열었다. 영화인들은 명동에서 진고개를 넘어 충무로로 근거지를 옮겼다. 1950년대 말에는 영화 타운이 형성되어 ‘한국의 할리우드’로 불렸다.

시련도 닥쳤다. 1961년 5·16 때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다방에서 커피 원두를 판매하면 혁명 분위기를 깨뜨린다”며 커피 수입을 제한하면서 커피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묘사된 것처럼 ‘커피 맛을 알아야 문화인 축에 들고, 커피 맛을 알아야 인생을 아는 것으로’ 쳐주는 분위기 때문에 커피는 반드시 마셔야 하는 음료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로 원두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늘었다.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원두커피전문점 ‘쟈뎅’이 오픈했고, 쟈뎅이 성공하자 ‘도토루’ ‘미스터커피’ ‘브레머’ 등 원두커피 체인점이 잇따라 생겨났고, 원두커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한다.

원두커피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1999년 한국에 상륙한 스타벅스를 필두로 2000년대 미국식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급증하면서다. 테이크아웃 커피잔 든 모습이 미국 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 속 세련된 뉴요커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커피 문화가 급속도로 퍼졌다. 2005년엔 스타벅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 여성들을 둘러싸고 ‘된장녀’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문화를 즐기려 점심은 분식집에서 먹더라도 후식으로는 밥값을 넘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 먹는다”는 여성이 기사에 등장하자, 남성들의 비난이 들끓으며 ‘된장녀’란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자신의 소득을 상회하는 명품이나 사치를 선호하는 여성’을 비꼬는 말이었다.

이처럼 커피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에서 한국이 커피에 급속히 매료된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근대화(서구화)라는 종교를 갖게 된 국민들로선 커피가 서양인들의 주된 음료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다. 도시에서도 커피는 늘 ‘구별 짓기’의 주요 수단이었으며, 그 기능은 지금도 왕성하다. 우리는 이른바 ‘양촌리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과 ‘스타벅스’를 즐겨 찾는 사람을 같은 부류로 보지 않는다.”

‘빨리빨리’ ‘독하게’ 한국 닮아가는 커피

커피 일러스트

커피 역사에서 한국이 일익을 담당한 게 있다. 원두커피가 확산되기 전까지 한국인 입맛 사로잡았던 달달한 믹스커피는 한국의 발명품이다. 동서식품이 1970년 인스턴트커피 생산에 성공했고, 1976년에는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물만 부으면 만들어지는 커피를 만들어냈다. 간편한 믹스커피 덕에 커피는 숭늉 대신 마시는 보편 음료가 됐다.

빨리빨리 문화는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풍경도 바꿔놨다. 2014년 스타벅스는 세계 최초로 한국 매장에 ‘사이렌 오더’를 도입했다. 모바일로 미리 주문해 현장에서 받는 시스템이다.

커피 선호도를 보면 한국 사회 특유의 쏠림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직장인 김지윤(42)씨는 팀원과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팀장인 김씨가 ‘메뉴를 통일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건만, 팀원 넷 모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김씨는 “커피는 특별히 맛 때문이라기보단 물 대신 마시는 음료”라면서 “이런 용도로 마시기에는 커피 음료 중에서 아메리카노가 제일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커피전문점에는 에스프레소, 카페 라테, 카푸치노, 마키아토 등 다양한 커피가 있다. 그러나 압도적 1위는 아메리카노 커피. 아메리카노(Caffe Americano)는 에스프레소 커피와 물을 대략 1대9 비율로 섞은 커피 음료. 스타벅스에선 1999년 오픈 이후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아메리카노가 한 번도 1등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카페 뎀셀브즈 김세윤 대표는 “아메리카노가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 있지만, 한국처럼 압도적이진 않다”고 했다.

한국인의 커피 입맛은 점점 진해지고 있다. 커피빈은 일반 카페라테보다 에스프레소가 2배 들어간 ‘더블 카페라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일반 얼음 대신 에스프레소 커피 원액으로 만든 얼음을 넣은 커피 ‘블랙다이몬’을 판다. ‘샷(shot·에스프레소 원액) 추가’를 요청하는 이들이 많아져 만들게 된 새로운 버전의 ‘한국형 커피’다.

더 독한 맛을 찾는 한국 소비자에 맞춰 던킨도너츠는 ‘엑스트롱 커피’를 개발했다. 기존 아메리카노에 커피 추출액·과라나·클로로겐산을 혼합한 ‘부스트 샷(boost shot)’을 추가해 각성 효과를 높인 제품이다. 한국에서만 판매한다.

추억의 헤이즐넛, 콜드브루… 냄비 근성 따라 커피도 흥망성쇠

커피시장 판매 규모
불같이 타올랐다 냉랭해지는 냄비 근성은 커피 입맛도 좌우한다. 1990년대 초반 인기 끌었던 헤이즐넛을 기억하시는지. 이제는 메뉴판에서 사라진 추억의 이름이지만 1990년대 초 서울 압구정동과 신촌 커피점에선 귀한 몸이었던 대표적인 ‘향 커피(flavor coffee)’다. 고소한 견과류 같기도 하고, 화려한 화장품 같기도 한 희한한 냄새가 나는 커피였다. 외국에 자주 나가는 세련된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보고 마셨다고 해서 ‘패션 커피’로 불리기도 했다. 커피 애호가들은 커피 이외의 불순한 냄새가 난다며 경멸했지만, 밋밋한 원두커피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열렬히 사랑받았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2016년에는 원두커피 가루를 사용해 차가운 물로 오랫동안 추출한 ‘콜드브루(cold brew·’더치 커피’로 불리기도 함)가, 2017년에는 커피에 질소(nitrogen)를 주입해 맥주 거품처럼 곱고 부드러운 질감을 낸 ‘질소 커피(‘나이트로 커피’로 불리기도 함)’가 여름철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한국인의 생필품이 된 커피. 어느덧 빨리빨리 변하고, 금세 질리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 돼 가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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